http://Mrmin.egloos.com2012-05-02T08:20:080.3 # by | 2012/04/03 17:21 | 오늘의 책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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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저는 <로마서>의 서두와 말미 부분부터 독해를 하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저는 이렇게 처음과 끝으로 틀을 잡는 것부터가 이미 이 편지에서 바울이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긴요한 지침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사의 형식이라는 게 관습적인 것이기는 했습니다만, 바울은 거기에 아주 특별한 내용을 집어넣고 있습니다. 그의 인사들은 정말이지 엄청나게 정확합니다. 이 편지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근본적으로 모든 것이 이미 이 인사말에 다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이건 마치 우리가 <정신현상학>이라는 제목을 이해할 경우 거기 들어 있는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머지는 다 생각할 수 있는 거죠. 또 <존재와 시간>이라는 제목에서 포인트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도 다를 바 없습니다). ----- 서문 강연을 시작하며 1.<로마서>에 입문하게 된 자전적 계기 2.유대 종교사에 있어서의 바울 : 메시아적 논리 1부_독해 : 바울과 모세, 새로운 신의 백성을 일으켜 세우다 1장 <로마서>의 수신자 1.로마에 대한 선전포고로서의 복음 : <로마서> 1장 1~7절 독해 2.예루살렘과 세계선교의 정당성 : <로마서> 15장 30~33절 독해 보유: 유대인 그리스도 신자의 운명 2장 노모스 : 법과 정당화 <로마서> 8~11장 독해 3장 선택과 파문 <로마서> 8장 31절~9장 5절 및 <탈무드> b.베라코트 32a절 독해 4장 프네우마 : 구원사의 능가와 이 세계의 극복 <로마서> 9~13장 독해 2부_결과들 : 바울과 근대, 메시아적인 것의 변용 5장 이 세계 안에 있는 낯선 자들_마르치온과 그 후계자들 6장 절대를 향해 결단하는 열심당원들_칼 슈미트와 칼 바르트 7장 세계정치로서의 니힐리즘과 미학화된 메시아주의_발터 벤야민과 테오도어 W.아도르노 8장 <성서> 종교로부터의 탈출_프리드리히 니체와 지그문트 프로이트 보론 야콥 타우베스와 칼 슈미트 사이의 역사 1.들어가며 2.1948~1978 : 30년 동안 계속된 거절 # by | 2012/04/02 17:00 | 오늘의 책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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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12/04/01 16:43 | 미분류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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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그의 현실의 부분과 전체를 보고 산다. 그러나 이 현실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나 이를 의식 속에 투영하여 파악함에 있어서 전체와 부분의 균형을 바르게 유지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 균형을 유지하려면, 긴장과 갈등과 투쟁을 무릅쓸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긴장이 커짐에 따라 많은 경우 우리는 현실의 한쪽을 선택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한쪽만의 선택은 우리에게 현실의 전모를 돌려 주지 않는다. 우리가 현실의 부분에 눈길을 모으고 그것을 틀림없이 포착하려 하면, 이 부분은 그것을 포함하는 전체에 의하여 뒤틀리고 제약되었음이 드러나게 되고 따라서 우리가 보는 부분은 현실의 참된 모습이 아닌 것이 된다. 그러나 현실의 전체를 보는 눈은 사람이 세계와 생리적으로 감각적으로 교섭하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명백한 사실인 구체적인 현실을 잃고 만다. 언제나 전체가 부분의 총화보다 크다고 하더라도 전체라는 부분은 집합에 기초해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구체적인 생존에 의하여 매개되지 않은 어떠한 전체적인 현실도 참다운 의미의 전체일 수 없고 단지 퇴화된 전체의 겉껍질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의 현실을 의식의 대상으로 또는 의식적인 의도의 대상으로 삼고자 할 때,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부분과 전체의 변증법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을 이해하고 창조하는 문학적인 방법에 있어서 특히 핵심적인 사실을 이룬다. 소설이나 시에 나타나는 현실은 무엇보다도 개체적인 삶 또는 개개의 순간의 구체적인 직접성 속에 체험되는 현실이다. 구체성과 직접성에 대한 문학의 집착이야말로 문학적 작업에, 그것이 인간 현실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창조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문학작품은, 아무리 사람이 그를 에워싼 커다란 상황을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을 구체적인 것으로서 묘사함으로써 문학에 고유한 영광을(또는 그 수모까지도) 차지한다. 그렇다고 하나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라는 것이 우리의 개체적인 삶의 외로운 감옥 속에 남아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면 문학의 현실이 유독 나날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사실의 보고보다 한 단계 높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문학이 단순한 사실의 보고와 다른 것은 그것이 전체성을 향한-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것이 의미 속으로 전체화되고 삶의 부분과 전체 사이의 균열이 하나로 이어져서 인간의 영웅적 가능성이 실현될 수 있는 차원을 향한 발돋움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학이 이 전체성을 얻는다는 것은 아니다. 보다 실제적으로는 개개의 문학작품이 겨냥하는 것은 그것이 다루는 한정된 경험의 전체성에 불과하고, 또 이것은 단지 이 특정한 작품의 구조적 원리 또는 형식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하나의 작품의 전체성은 하나의 삶의 전체성, 또 삶 전체의 전체성으로 이어진다. 하나의 작품은 이 복합적인 차원의 전체성에 다양하게 이어져 있으면 이어져 있을수록 그만큼 위대한 작품이 된다. 그러한 작품만이 개체로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인간의 가장 구체적이고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전체를 향한 발돋움은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그것은 현실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연적인 조건이다. 어떤 현실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가 아무리 정확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 부분적인 현실을 규정하는 큰 테두리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이해는 하나의 망상에 불과할 수 있다.(12-3) # by | 2012/03/19 11:29 | 오늘의 책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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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교 윤리의 문제를 단지 개괄하기만을 원하는 사람도 반드시 다음과 같은 과도한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윤리적 문제와 씨름하도록 자신을 이끌어가는 두 가지 질문, 곧 "내가 어떻게 선하게 되는가?"와 "내가 어떻게 선한 일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처음부터 부적당한 것으로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으며, 그 대신에 전적으로 다른 질문, 곧 앞의 두 질문과는 무한히 다른 질문인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이러한 요구는 매우 결정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궁극적 현실에 대한 결단을 전제하며, 그래서 신앙의 결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만약 윤리적 문제가 본질적으로 자신의 선한 존재와 선한 행위에 대한 질문 안에서 설명된다면, 궁극적 현실인 자아와 세상을 위한 결단은 이미 내려진 셈이다. 그렇다면 모든 윤리적 반성은 나는 선하고 세상은-나의 행위를 통해-선하게 된다는 것을 목표한다. 하지만 만약 자아와 세상 자체의 이러한 현실이 전혀 다른 궁극적 현실, 곧 창조자와 화해자와 구속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현실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윤리적 문제는 곧장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는 셈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선해진다거나 세상의 상황이 나를 통해 개선된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실이 어디서나 궁극적인 현실로 입증된다는 사실이다." (서론 중) # by | 2012/03/12 16:06 | 오늘의 책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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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트는 충동, 특히 성 충동의 유동성을 설명하려고 특히 애를 쓴다. 프로이트는 사랑이 나르시시즘적인 자기 도취에서 시작하여, 발달의 복잡한 사다리를 올라가 성 본능과 연결되면서 상당히 다양한 만족을 제공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사랑의 대립물이자 동반자로서 그 부속물이라고 할 수 있는 증오는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재료를 제공한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공존하는 양가감정이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흔한 상태인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인간은 사랑과 증오, 사랑과 무관심, 사랑하기와 사랑받기 등 대립물들 사이를 항해할 운명인 것처럼 보인다." (32) # by | 2012/02/29 13:53 | 오늘의 책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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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50년 전인 1856년 5월 6일에 태어났다. 이제 탄생 150년을 맞이한 셈이니, 그의 작업과 영향을 새로운 눈으로 보자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까다로운 과제다. 그의 평판은 지금도 백 년 전이나 다름없이 논란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정신을 만든 또 한 명의 위대한 인물인 찰스 다윈 ...거의 모두가 동의하는 영역에 계속 종교를 밀반입하려 드는 거부자들에게는 예외지만, 오늘날 다윈은 생물학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다윈과 위치가 다르다. 그의 유산을 놓고 싸우는 집단들은 워낙 사이가 벌어져 서로 받아들일 만한 타협안을 두고 동의할 가능성, 심지어 그런 타협안을 마련할 가능성조차 상상하기 어렵다. ...자연 선택을 뒷받침하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증거들은 압도적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은 그런 권위 있는 증거가 단 한 조각만 있어도 기뻐할 것이다. ...정신은 종의 역사보다 분석하기가, 심지어 묘사하는 것도 까다롭다. ...프로이트의 지지자들은 그를 유용한 기여를 한 흥미로운 정신 연구자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섭리의 예언자로도 본다. 다름 아닌 문화적 영웅으로 보는 것이다. 프로이트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그를 오도된 심리학자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독재자, 거짓말쟁이, 사기꾼, 한마디로 돌팔이로 본다. ...나도 이 전기에서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하는 의무를 회피하지 않으려 했다. ... 나는 긍정적인 논조로 이 전기를 섰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영웅 숭배의 책은 아니라고 믿는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이트가 인간에 불과하며, 따라서의심 어린 조사의 대상이라는 가정을 버리지 않았다. ...프로이트 탄생 150주년은 안쓰러운 마음으로 아쉬워할 일이라기보다는 기념할 일이다. 그의 가장 급진적인 견해 가운데 몇 가지의 생존가치에 의심을 품은 심리학자라 해도, 설사 그의 작업이 세부적으로는 아무리 고칠 곳이 많다 해도, 그의 작업이 획기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은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간, 모든 인간이 문명의 딜레마와 직면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문명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성취인 동시에 가장 큰 비극이기 때문이다. 문명은 개인이 충동을 통제하고, 소망을 부정하고, 욕정을 제한할 것을 요구한다. 환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프로이트의 지혜로운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문명이 부과하는 속박 없이 살 수 없지만, 그런 속박 안에서는 진정으로 자유롭게 살 수도 없다. 좌절과 불행은 인간 운명의 한 부분이다. (머리말 중) # by | 2012/02/27 19:56 | 오늘의 책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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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문명은 무너졌다. 이 책은 이 사건의 정치적,경제적 여러 기원들 그리고 그것이 불러들인 거대한 전환을 다룬다. 19세기 문명을 떠받치던 것은 네 개의 제도였다. 첫 번째는 유럽 강대국들 사이에 장기간의 파괴적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한 세기동안이나 방지한 세력 균형 체제였다. 두 번째는 세계 경제라는 19세기의 독특한 조직체의 상징이었던 국제 금본위제였다. 세 번째는 전대미문의 물질적 복지를 낳았던 자기조정 시장이었다. 네 번째는 자유주의적 국가였다. 이 제도들 중 두 개를 경제 제도, 다른 두 개를 정치 제도라는 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또 두 개는 국내 제도, 다른 두 개는 국제 제도라는 식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우리 문명의 역사는 이 네 개의 제도들 사이에서 그 대략적인 특징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이 제도들 가운데에 금본위제가 결정적인 것임이 밝혀졌다. 이것의 몰락이야말로 그 문명 붕괴 파국의 원인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 제도를 구출하기 위해 다른 제도들이 동원되었지만 모두 실패해버렸고, 결국 금본위제가 파탄날 즈음에는 그 다른 제도들 대부분이 이미 희생당해 무너진 상태였다. 하지만 19세기 체제가 나오게 된 원천이자 모태였던 것은 자기조정 시장이었다. 19세기라는 독특한 문명이 발흥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자기조정 시장의 출현이라는 혁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본위제란 이 국내의 시장경제체제를 국제적 영역으로 확장하기 위한 노력에 불과한 것이다. 또 세력 균형체제란 이 금본위제에 기초하여 세워진 상부 구조였고 그 작동 또한 금본위제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유주의적 국가라는 것도 그 자체가 자기조정 시장의 피조물이었다. 결국 19세기 문명의 제도 체제를 이해하는 열쇠는 시장경제를 통제하는 여러법칙에 있었던 셈이다. (93-4) # by | 2012/02/24 19:11 | 오늘의 책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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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독자들을 도스또예프스키의 생애, 작품, 예술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서이다. (들어가며) ----- 모스끄바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스또예프스키라는 이름의 거리가 있다. 지하철 도스또예프스키 역에서 내려 역 뒤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이곳에 도스또예프스키 생가가 있다. 현재 도스또예프스키 국립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은 19세기 당시, 제법 규모가 큰 병원의 부속 건물이었다. 모스끄바 마린스키 빈민구제 병원이다. (15) 1821년...10월 30일,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키가 태어났다. 표도르는 둘째로 태어낫는데, 위로 한 살 터울인 형 미하일이 있고, 아래로 여러 동생들이 있다. ... 아버지는 성격이 매우 급하고 거칠었다. ... 하지만 그는 자식들에게 체벌을 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형 미하일과 표도르에게 직접 라틴어를 가르쳤다. ...당시 모스끄바에 있는 공립중학교를 마다하고 보다 교육 여건이 좋은 사립학교에 두 형제를 입학시켰다. (19) 기숙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표도르는 역사와 문학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N.까람진의 <<러시아 제국사>>는 그가 반복해서 읽었던 책들 중 하나이다. ...그는 형과 함께 ...뿌쉬낀의 시를 자주 암송했다. (20) 도스또예프스키의 유년 시절은 동생인 안드레이 미하일로비치가 남긴 회생기에...기록되어 있다. (22-3) (어머니) 마리야 포도로브나는 1837년 2월 27일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해는 시인 뿌쉬낀이 죽은 해이기도 하다. (34) 슬라브주의자들은 모스끄바를 정신적 고향으로 여겼다. 도스또예프스끼도 슬라브주의자로서 모스끄바를 러시아 정신의 부활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와 반대로 그가 반평생을 살았던 뻬쩨르부르그는 서구주의자의 본거지였다. (36) 도스또예프스키가 처음으로 뻬쩨르부르그에 온 것은 1837년 5월 초이다. ...그의 부친은 두 아들을 뻬쩨르부르그에 있는 공병학교에 입학시키려 했다. (42) 1861년에 러시아에서 농노해방이 선포되었다. (44-5) (공병학교 시절) 도스또예프스끼는 ...F.실러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형에게 보낸 많은 편지에서 실러에 대해 언급하면서 칭송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실러 외에도 호메로스, 위고, 셰익스피어, 괴테, 호프만, 라신, 코르네유 등을 언급했다. (54) 도스또예프스키가 공병학교를 다니던 시절인 1839년 6월 6일, 아버지가 농노들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58) "인간 자체가 하나의 비밀이지. 그걸 파헤쳐내야 해. 만약 어떤 사람들이 그 비밀을 해결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면 시간을 낭비했다고 할 수 없겠지. 나는 인간이고 싶기에, 이 수수께끼에 골몰하고 있는 거야."(61) 도스또예프스끼는 고골을 자신의 진정한 문학적 스승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문학이 고골로부터 나왔다고 인정했다. (68) 고골과 더불어 도스또예프스키에게 문학적 영감을 준 작가는 프랑스 소설가 H.발자크였다. (71) 1860~70년대 러시아 사회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영햐을 끼친 것은 잡지들이다. 진보적인 지식인, 작가들의 거점 역할을 담당했던 잡지는 네끄라소프가 주도한 <<동시대인>>이었다. 1850년대 말에서 1860년대 초 자유주의자의 사상적 중심에는 M.까뜨꼬프의 <<러시아 통보>>가 있었다. 이와 더불어 당시 가장 유명했던 잡지로 1866년 역사학자 M.스따슐레비치가 출간한 <<유럽통보>>가 있다. (138) 첫번째 유럽 여행 ...그는 1862년 6월 12일 비스바덴에서 처음으로 도박에 빠졌다. 그후로 10년 동안 그는 도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57) 도스또예프스끼는 빚쟁이들에게 쫓겨 뻬쩨르부르그를 떠나 유럽으로 도주했다. 이것이 그의 세번째 유럽 여행이다. ...<<죄와 벌>>은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다. (175) (그는) 브란겔 남작과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두 달 반 동안 유럽에 체류하다 10월 10일 뻬쩨르부르그로 돌아왔다. 그리고 <<죄와 벌>> 제1부를 1866년 1월 잡지 <<러시아통보>>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주위 권유에 따라 속기사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스니뜨끼나를 채용했다. (180) 그녀는 1911년에서 1916년 사이에 ...회고록을 집필했다. ...이 회고록은 도스또예프스키의 편지와 함께 작가의 생애 후반기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자료이다. (182) 1866년 11월 8일, 도스또예프스끼는 조심스럽게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에게 청혼을 했다. ...결혼식은 1867년 2월 15일 성 뜨로이쯔끼 이즈마일로프 사원에서 조촐하게 치렀다. (203) (그는) 라파엘로를 최고의 서양화가라고 생각했다. 특히 <시스티나의 성모>를 높이 평가했다. ...이 밖에도 그는 티치아노의 <지금>, 바르톨로메 무리요의 <아기 예수를 안은 마리아>, 코레조의 <거룩한 밤>, A.카라치의 <그리스도>, P.바토니의 <회개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라위스달의 <사냥>, 클로드 로랭의 <풍경, 아침과 저녁>, 렘브란트 반라인의 <렘브란트의 그의 아내>, 안토니 반다이크의 <영국 왕 찰스 1세>, 장 에티엔 리오타르의 <초콜릿 나르는 여자>등을 즐겨 보았다. (213-4) 한스 홀바인의 <그리스도의 시신>은 도스또예프스키를 압도했다. (217) # by | 2012/02/08 16:56 | 오늘의 책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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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지음, 문학동네, 2011 "...이제까지 역사-인문-사회과학적 연구와 분석은 예술의 본질과 탄생-발전과정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연극은, 문학은, 미술은, 무용은, 음악은 언제, 어떻게 태어났는가? 그런 질문과, 그 해답은 중요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예술 각 장르가 왜 태어났으며 왜 아직도 우리 주변에 있으며, 왜 앞으로도 존재할 것인가,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과 그 해답이다. 역사가 예술을 이해하지 않고 예술이 오히려 역사를 이해할 수도 있다는, 이해해야 하는 면도 있다는 점이다. ...이제 예술-장르론은 무엇보다, 예술이 스스로, 예술적으로 설명하게끔 하는 방식을 요한다. 그렇게, 예술을 알면서 우리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될 때, 그렇게 예술의 생애에 우리의 생애가 동참할 때, 그렇게 우리의 예술적 생애와 예술의 현실적 생애가 살을 섞을 때, 현대예술이 부딪힌 벽은 공의 통로로, 질적 도약의 계기로 전화한다. ...줄거리의, '형식이 역사-사회적 차원을 입'으면서 신화성을 극복하는 순간, 이 순간은 예술 탄생(순간)사에 다름아니며, 거꾸로, 신화는 예술 탄생사로 읽힐 때 최종적으로 온전하게 이해된다. 줄여 말하면, 모든 예술은 자신의 탄생 과정을 스스로 설명하며, 그 원형은 '신화=형식'이다. 그리고, 각 예술장르 고전은 장르가 태어나는 이야기 자체의 전범적인 형상화에 다름아니다. 자신의 탄생을 자각한 이야기가, 그 이야기들이 이제 자문한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에 자문하는 것과 같은 겹을 이룬다. 그 겹이 서로 약간씩 어긋나며 서로를 풍부하게 만들면서 문학-예술은 발전한다. 그것이 인간-사회의 역사적 발전과 약간씩 어긋나면서 서로를 풍부하게 한다."(서-문화의 맥락, 몇 개의 생각들 중) # by | 2012/02/07 16:47 | 오늘의 책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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